병원에서 "백혈병"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아마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을 받으셨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열 살짜리 사촌동생이 그 진단을 받던 날, 가족 중 누구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동생은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히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성 골수성 백혈병, 무섭지만 이제는 싸워볼 수 있는 병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생존율 30%에서 90%로, 필라델피아 염색체를 저격하는 표적치료제의 혁신
20~30년 전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10년 생존율은 채 10%가 되지 않았습니다. 골수 이식이라는 고위험 시술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절반이 넘는 환자에게는 기회조차 닿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표적항암제, 그중에서도 최초의 경구 표적치료제인 글리벡(성분명: 이마티닙)이 등장하면서 장기 생존율은 85~90%대로 뛰어올랐습니다(출처: 국립암센터).
이 변화를 이해하려면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핵심 원인을 짚어야 합니다. 이 질병은 필라델피아 염색체(Philadelphia chromosome)라는 이상 염색체가 만들어낸 BCR-ABL1 융합 유전자가 원인입니다. 여기서 필라델피아 염색체란, 9번과 22번 염색체의 일부가 서로 자리를 바꾸며 생긴 비정상 염색체를 말하는데, 이것이 정상 세포에는 없는 BCR-ABL 단백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면서 백혈구 세포가 통제 불가능하게 증식하는 것입니다.
글리벡의 혁신은 이 BCR-ABL 단백질만을 선택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정상 세포의 단백질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표적만을 공격하는 방식, 당시 학계가 이를 두고 "암과의 전쟁에서 처음 얻은 유도탄"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주사가 아닌 알약, 즉 경구제라는 점도 환자 삶의 질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사촌동생이 입원 중에도 "이 약 언제 끊냐"라고 물어보던 기억이 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알약 하나를 삼키는 것으로 삶을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이, 당시 저에게도 작은 기적처럼 들렸습니다.
이후 제약업계는 글리벡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2세대, 3세대, 최근에는 4세대 표적항암제까지 연속적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임상시험까지 포함하면 10종의 표적항암제가 사용되고 있으며, 그중에는 글리벡에 내성이 생긴 환자에게도 효과를 발휘하는 약물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다만 2세대·3세대 약물은 효과가 강한 만큼 동맥 혈관 부작용, 즉 관상동맥이나 뇌혈관에 혈전이나 동맥경화가 생기는 문제가 보고되고 있어, 70세 이상 고령 환자에게는 오히려 1세대 글리벡이 더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는 점도 최근 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 1세대 글리벡(이마티닙): 최초의 경구 표적항암제, 고령 환자에게 안전성 측면 유리
- 2세대(타시그나, 보수립 등): 반응 속도가 빠르지만 콜레스테롤·혈당 상승, 동맥 혈관 부작용 주의
- 3·4세대: T315I 돌연변이 등 기존 약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에게 적용
- 표적항암제 선택 기준: 환자 나이, 동반 질환, 내성 돌연변이 유무를 종합 판단

혈중 약물 농도를 사수하라: 백혈병 줄기세포를 억제하는 매일의 루틴
완치율이 90%라는 숫자만 보면 안심이 될 것 같지만, 제 경험상 6년간의 투병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 숫자 뒤에 얼마나 치열한 일상의 싸움이 있는지를 압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치료 성패는 '제때, 매일, 빠짐없이' 약을 복용하는 습관에서 상당 부분 결정됩니다.
이 이유는 이 질병의 특성에 있습니다. BCR-ABL1 유전자는 매일 새로운 백혈병 세포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백혈병 줄기세포(leukemia stem cell)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여기서 줄기세포란 스스로를 복제하며 무한히 암세포를 공급하는 뿌리 같은 세포를 말합니다. 현재의 표적항암제는 이 줄기세포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합니다. 대신 줄기세포가 만들어낸 성숙 백혈병 세포들을 지속적으로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복용을 빠뜨리면 혈중 약물 농도(blood drug concentration)가 떨어지고, 그 틈을 타 암세포가 빠르게 증식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으면 물이 새는 구조입니다.

사촌동생 치료 초기에 숙모가 가장 힘들어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아이가 약을 먹기 싫어한다고, 오늘 하루쯤은 괜찮지 않겠냐고 물어봤을 때, 담당 의사가 단호하게 "절대 안 된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나중에야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약물 상호작용과 초기 반응 평가: 성공적인 잇몸·혈관 합병증 관리법
음식 관리도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자몽, 석류, 세빌 오렌지, 스타프루트 같은 과일은 간에서 약물을 분해하는 효소(CYP3 A4)를 억제해 혈중 약물 농도를 예상치 못하게 높입니다. 쉽게 말해 이 과일들이 약의 농도를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려 부작용을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원액 형태로는 절대 피해야 하며, 치료 초기에는 건강기능식품도 의사와 먼저 상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출처: 약학정보원).
또 하나 치료 초기에 집중해야 할 것은 처음 선택한 표적항암제가 맞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전문가들이 처방하더라도 처음 선택한 표적항암제로 10년 후까지 좋은 반응을 유지하는 환자 비율은 60%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40%는 내성이 생기거나 부작용으로 약을 교체해야 했습니다. 이 말은 곧, 치료 초기 2년이 결정적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기적인 BCR-ABL1 유전자 정량 검사(분자유전학적 반응 평가)를 통해 수치가 제대로 내려가고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만성 골수성 백혈병, 초기 증상이 없다는데 어떻게 발견하나요?
A. 대부분은 건강검진의 혈액검사에서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와 우연히 발견됩니다. 증상이 진행되면 비장이 커지면서 왼쪽 윗배에 불쾌감이나 통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40~50대 이상이라면 정기 검진을 빠뜨리지 않는 것이 현실적인 조기 발견 방법입니다.
Q. 표적항암제를 평생 먹어야 하나요?
A.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정 기간 약물 치료로 BCR-ABL1 유전자 수치가 깊은 분자학적 관해(deep molecular response) 상태, 즉 유전자가 검출 한계 이하로 내려간 상태를 장기간 유지하면, 의사의 판단 하에 약을 중단하는 시도를 해볼 수 있습니다. 다만 중단 후에도 정기적인 추적 검사는 필수이며, 수치가 다시 오르면 즉시 재복용해야 합니다.
Q. 자몽 주스 조금 마셨는데 정말 위험한가요?
A. 소량이 섞인 음료라면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원액 자몽 주스나 생과일 자체는 피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자몽 성분이 간의 약물 대사 효소를 억제해 혈중 약물 농도를 예상치 못하게 올릴 수 있고, 이는 부작용 위험으로 이어집니다. 불확실할 때는 담당 의사나 약사에게 먼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Q. 2세대 표적항암제가 더 좋다면 처음부터 쓰면 되지 않나요?
A. 효과 측면에서는 2세대가 반응이 빠른 경우가 많지만, 동맥 혈관 부작용 위험이 있어 환자의 나이, 혈당, 콜레스테롤, 혈압 등 개인 상태를 종합적으로 따져야 합니다. 특히 70세 이상 고령 환자에게는 1세대 글리벡이 오히려 더 안전하고 장기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 최근 의학계의 견해입니다. 처음 약 선택이 10년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만큼, 전문의와 충분히 상의하시기를 권합니다.
Q.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유전되나요?
A. 특정 유전병처럼 부모에서 자녀로 직접 전달되는 질환은 아닙니다.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태어난 이후 체세포에서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에 해당합니다. 벤젠·톨루엔 같은 화학 물질 노출, 방사선, 일부 항암제 치료 경험 등 후천적 환경 요인이 더 주요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론
사촌동생이 완치 판정을 받던 날,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울고 웃었습니다. 제 경험상 6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지만, 그 터널 끝에 빛이 있었다는 것이 지금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여전히 혈액암입니다. 하지만 제때 진단받고, 올바른 표적항암제를 선택해 매일 빠짐없이 복용하고, 정기적으로 BCR-ABL1 유전자 수치를 확인한다면, 90% 이상의 환자가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본인이든, 가족이든, 방금 진단을 받은 직후든 — 절망보다 먼저 전문의를 만나시기를 권합니다. 약 선택 하나, 복용 습관 하나가 10년 뒤의 삶을 바꿉니다. 동생이 "형, 나 다 나으면 떡볶이 먹을 거야" 하던 그 소망처럼, 작지만 구체적인 희망을 붙잡고 치료를 이어가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