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지하철 의자에 겨우 앉아서 다리를 쭉 뻗는 순간, '아, 살았다' 싶은 느낌.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매일 그랬습니다. 저는 처음엔 그게 그냥 직업적 숙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양말 자국이 30분이 넘도록 안 사라지고,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서 벌떡 깨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그게 하지정맥류의 신호였다는 걸, 저는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핏줄 안 튀어나오는 '잠복성 복재정맥류'와 정맥 고혈압의 위험성
하지정맥류 하면 많은 분들이 종아리에 지렁이처럼 구불구불 튀어나온 핏줄을 먼저 떠올립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제 다리는 겉으로 봤을 때 아무 이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병원에 가면서도 반신반의했는데, 초음파 검사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복재정맥류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복재정맥류란 허벅지 안쪽 깊은 곳을 타고 흐르는 복재정맥(Great Saphenous Vein, GSV)에서 판막 기능이 망가져 피가 역류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피부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아서 스스로 의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정맥류의 구조를 이해하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감이 잡힙니다. 하지의 정맥은 중력을 거슬러 아래에서 위로, 즉 심장을 향해 피를 올려 보내야 합니다. 이때 피가 역류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 판막(Venous Valve)입니다. 판막이란 일방통행 문처럼 피가 올라갈 때는 열리고, 아래로 내려오려 하면 닫혀버리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서 있으면 종아리 근육이 피를 위로 짜 올려주는 펌프 역할을 제대로 못 하게 되고, 판막 혼자 그 압력을 버티다 결국 망가집니다.
판막이 손상되면 정맥 내압이 올라가면서 혈관 벽이 점점 늘어나는 정맥 고혈압(Venous Hypertension) 상태가 됩니다. 정맥 고혈압이란 정맥 혈관 안의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상태로, 장기간 지속되면 혈관 벽이 손상되고 피부 변색이나 궤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내 하지정맥류 유병률은 성인의 약 20~25% 수준으로 추산되며,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이상 높습니다(출처: 대한혈관외과학회).
제가 병원에서 초음파 화면을 보면서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다리 쪽이 오히려 역류가 훨씬 심하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눈에 안 보이는 게 더 무섭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하지정맥류를 의심해야 하는 대표적인 증상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저녁이 되면 다리가 무겁고 퉁퉁 부어오른다
- 양말을 벗었을 때 자국이 오래 남는다
-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자주 난다
- 다리가 저리거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 혈관이 피부 위로 파랗게 도드라져 보인다

이 다섯 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혈관 전문의를 찾아가 보시는 걸 권합니다. 다리가 저리고 아프면 정형외과부터 가는 분들이 많은데, MRI 찍어도 디스크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난감해하시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혈관성 원인, 즉 하지정맥류가 통증의 출처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료용 압박스타킹의 단계적 감압 메커니즘
진단을 받고 나서 처음 처방받은 것이 의료용 압박스타킹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냥 타이츠 같은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근데 막상 받아보니 병원에서 종아리 둘레, 허벅지 둘레, 발목 둘레를 일일이 재고 나서 처방을 내리더군요.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의료용 압박스타킹은 단계적 감압(Graduated Compression) 구조로 설계됩니다. 단계적 감압이란 발목 쪽 압력이 가장 높고 허벅지 방향으로 올라갈수록 압력이 점진적으로 낮아지도록 만들어진 방식으로, 이 구조 덕분에 피가 위쪽으로 밀려 올라가는 힘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인터넷에서 파는 일반 압박 레깅스는 이 구조가 없거나 엉터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압력이 균일하거나 오히려 허벅지 쪽이 더 조이면, 내려오는 동맥 혈류까지 방해해 오히려 상태가 나빠질 수 있습니다.
저는 직접 경험해 보니 병원 처방 스타킹과 인터넷 제품 사이에 확실한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처방 제품은 저녁에 다리 무게감이 눈에 띄게 줄었는데, 예전에 이것저것 인터넷에서 사 신어봤던 제품들은 효과가 거의 없었습니다. 비싸기만 하고 사이즈도 맞지 않았죠.
서울대병원이 권장하는 하지정맥류 운동법
보존적 치료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운동, 약물, 그리고 압박스타킹인데, 이 중 운동 효과가 가장 크다는 건 저도 동의합니다. 단,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운동이 좋다는 말에 헬스장에서 바벨 스쿼트나 레그프레스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미 판막이 손상된 상태라면 무거운 무게 운동은 복강 내압을 급격히 높여 하체 정맥압을 더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정맥류 환자에게 권장되는 운동은 수영, 가벼운 평지 걷기, 실내 자전거처럼 종아리 근육을 리듬감 있게 사용하면서 복압을 올리지 않는 종류입니다(출처: 서울대학교병원 건강정보).
반대로, 다리가 무겁고 아플 때 뜨거운 탕에 발을 담그거나 사우나를 즐기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게 혈액순환에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열 자극이 정맥 혈관을 더 확장시켜 피가 아래로 더 쏠리게 만듭니다. 다리가 아플 때는 오히려 찬물 샤워나 냉찜질 쪽이 혈관을 일시적으로 수축시켜 훨씬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큰 차이였습니다. 직관과 반대되는 상식이라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저녁 다리 통증이 확실히 달랐습니다.

하지정맥류는 판막이 한번 망가지면 자연 회복이 되지 않는 질환입니다. 그래서 증상이 경미할 때 빠르게 대처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가족 중에 하지정맥류가 있다면 특히 젊을 때부터 주의가 필요한데, 유전적으로 혈관 벽이 약한 경우 20~30대에도 발병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저도 결국 바리스타 일을 계속하면서 관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다리 피로를 훈장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몸의 경고를 무시하는 일이었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다리가 저리거나 붓는 증상이 반복된다면, 일단 혈관 전문의에게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안에서는 이미 진행 중일 수 있으니까요.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 조언이 아닙니다.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