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귀에 물이 들어간 줄 알았습니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울 때마다, 왼쪽으로 고개를 휙 돌릴 때마다 귓속 깊은 곳에서 아주 작은 유리구슬이 콘크리트 바닥을 구르는 듯한 기묘한 소리가 났거든요. 통증은 없었지만 뭔가 제 경험상 이건 귀 안에서 실시간으로 위치 이동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반차를 쓰고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의사 선생님은 허탈할 정도로 명쾌하게 진단을 내리셨습니다. "귀에 있는 돌이 제자리에서 떨어져 굴러다니는 겁니다. 이석증이에요."
귀의 구조와 이석증의 원리, 그리고 안진검사
이석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귀 안쪽 구조부터 짚어야 합니다. 우리 귀 가장 안쪽에는 내이(內耳)가 있는데, 이 내이는 크게 달팽이관과 전정기관으로 나뉩니다. 달팽이관은 소리를 처리하는 기관이고, 전정기관은 몸의 평형을 담당합니다. 어지럼증이 생기는 원인의 상당수가 바로 이 전정기관에 있습니다.
전정기관은 다시 반고리관과 이석기관으로 구분됩니다. 반고리관이란 우리 몸의 회전 운동을 감지하는 기관으로, 세 개의 관이 서로 90도를 이루며 3차원 방향 정보를 뇌로 전달합니다. 이석기관은 그 앞에 붙어 있는데, 아주 작은 칼슘 결정체인 이석(耳石)이 세포 위에 떠 있다가 몸이 기울면 중력에 따라 움직이면서 방향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 이석이 제자리에서 떨어져 반고리관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바로 이석증입니다.

이석이 들어간 반고리관이 어디냐에 따라 치료 방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반고리관은 후반고리관, 수평반고리관(가쪽 반고리관), 상반고리관 세 가지가 있는데, 임상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후반고리관 이석증이며, 전체 이석증 환자의 약 80~90%를 차지합니다(출처: 대한평형의학회).
이석치환술의 원리와 안진검사
그렇기 때문에 이석증 진단에서 핵심은 주관적인 어지럼증 호소가 아니라 비디오 안진검사(VNG)입니다. 여기서 비디오 안진검사란 특수 카메라가 내장된 안경을 착용한 상태에서 특정 자세를 취했을 때 나타나는 눈의 비정상적 움직임, 즉 안진(眼振)을 자동으로 포착하는 검사입니다. 안진이란 눈동자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빠르게 떨리거나 회전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 안진의 방향이 회전성인지 수평성인지를 보고 이석이 어느 반고리관에 들어갔는지를 정확히 판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안경을 쓰고 검사를 받아봤는데, 고개를 특정 방향으로 꺾는 순간 어지럼증이 올라오면서 검사가 끝나기까지 30초가 꽤 길게 느껴졌습니다.
이석증 진단 시 확인하는 핵심 항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석이 유입된 반고리관의 위치 (후방, 수평, 상방)
- 안진의 방향과 속도 (회전성 안진 vs 수평성 안진)
- 어느 쪽 귀에서 발생했는지 (좌측 vs 우측)
- 자세 변환 시 증상 재현 여부
진단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은 바로 치료실 침대에 저를 눕혔습니다. 이석증 치료는 약을 먹어서 돌을 녹이는 방식이 아닙니다. 이석이 칼슘 덩어리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머리를 정해진 각도로 돌려 이석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야 합니다. 이 치료를 이석치환술이라고 하는데, 그중 후반고리관 이석증에 사용하는 대표 기법이 에플리(Epley) 치료법입니다. 에플리 치료법이란 45도, 90도씩 단계적으로 머리를 돌려 이석을 반고리관 밖으로 밀어내는 도수 조작법으로, 이석이 중력을 따라 단계별로 이동하도록 자세를 순서대로 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치료 후 의자에서 일어났을 때 그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약 한 알 없이 몸을 몇 번 기울이는 것만으로 증상이 사라진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위험한 '셀프 치료'의 경고와 재발 예방을 위한 비타민 D
한 가지 분명히 짚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에플리 치료법 영상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집에서 따라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이건 상당히 위험한 선택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후반고리관 이석증이라고 자가 판단하고 에플리를 어설프게 따라 하다가, 이석이 빠져나오기는커녕 수평반고리관이나 상반고리관으로 흘러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지럼증이 오히려 2~3배 심해져 응급실을 찾게 됩니다. 각도와 대기 시간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이석이 엉뚱한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첫 치료만큼은 반드시 병원에서 받아야 합니다.
이석증은 1년 이내에 약 20% 정도의 재발 가능성이 있습니다. 재발이 잦은 분들께는 한 가지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석의 본질은 칼슘 결정체이기 때문에, 몸속 칼슘 대사를 조절하는 비타민 D 수치가 이석의 안정성과 직접 연관됩니다. 실제로 비타민 D 결핍이 이석증 재발의 위험인자임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축적되어 있습니다(출처: 국립중앙의료원).
이석증이 반복된다면 비타민 D 수치 검사를 받아보고, 부족하다면 보충제와 함께 햇볕을 의식적으로 쬐는 것이 예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이석증은 적절히 치료받으면 후유증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질환입니다. 갑자기 고개를 돌릴 때 어지럽거나 귓속에서 정체 모를 소리가 난다면 너무 오래 참지 말고 이비인후과를 찾아 비디오 안진검사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어지럼증 약으로 증상만 억누르는 것은 이석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정확한 진단 후 이석치환술을 받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증상이 있을 경우 반드시 의료 전문가의 진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