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서 진물이 나오면 무조건 중이염이라고 생각하시지 않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은 약 대신 껌을 처방해 주셨습니다. 중이염 진단을 받고도요. 그날 이후로 귀 질환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걸 제 몸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제 귀에 일어났던 비밀, 그리고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귀 질환의 실체를 공간별로 짚어보겠습니다.
진물 나면 무조건 중이염? 고막 하나로 갈리는 '외이도'와 '중이'의 차이
8살 때 수영장에서 마감 휘슬이 울릴 때까지 놀다가 집으로 걸어오던 중 오른쪽 귀가 갑자기 웅웅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한 발로 껑충껑충 뛰어보고, 면봉으로 아무리 파내 보아도 그 둔탁한 먹먹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까지 TV 소리가 한쪽으로만 아득하게 들리자 어머니 손에 이끌려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중이염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귀의 염증은 어느 공간에 생겼느냐에 따라 진단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외이도염(外耳道炎)이란 고막 바깥쪽, 즉 귓구멍부터 고막 직전까지의 통로인 외이도에 염증이 생긴 상태를 말합니다. 물놀이 후 귀에서 진물이 나온다면 대부분 이 경우입니다.
외이도 안쪽에 곰팡이균이 번식하면서 가려움과 분비물이 생기는 것인데, 전문 용어로는 이진균증(耳眞菌症)이라고 부릅니다. 이진균증이란 귀 외이도에 진균, 즉 곰팡이가 과증식 하여 가려움·진물·귀 막힘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감염 상태입니다. 이 경우에는 안쪽에 쌓인 찌꺼기를 깨끗이 제거한 뒤 항진균 점이액(귀에 떨어뜨리는 물약)을 1~2주 사용하면 대부분 호전됩니다.

반면 중이염(中耳炎)은 고막 안쪽, 중이 공간에 염증이 생긴 것입니다. 중이란 고막과 달팽이관 사이에 위치한 공기로 채워진 작은 방으로, 소리 진동을 달팽이관으로 전달하는 이소골(耳小骨) 세 개가 들어있는 구조입니다.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외이도염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만약 고막에 구멍이 뚫려 있다면 수영 중 외이도에 들어온 균이 그 틈을 타고 중이까지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외이도염이 곧 중이염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공간 하나 차이라는 것만 기억해도 훨씬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중이염과 외이도염을 구별하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진물·가려움이 주된 증상이고 수영 후 발생했다면 외이도염 가능성이 높습니다.
- 열이 나고 심하게 보채는 영유아라면 급성 중이염을 먼저 의심해야 합니다.
- 열도 통증도 없는데 아이가 갑자기 산만해졌거나 TV 볼륨을 높인다면 삼출성 중이염을 확인해야 합니다.
- 어떤 경우든 자가 판단보다 이비인후과에서 고막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한동안 껌 많이 씹어봐" 황당했던 의사의 처방과 '이관'의 비밀
저는 그날 병원에서 약을 받을 것이라고 100%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귀를 들여다보시더니 "한동안 껌 많이 씹어봐"라는 한 마디와 함께 저를 돌려보내셨습니다. 약을 받지 못한 첫 경험이라 어리둥절했지만, 며칠 동안 껌을 열심히 씹었더니 정말로 소리가 선명하게 돌아왔습니다. 그게 신기해서 나중에야 이유를 찾아봤는데, 이관(耳管) 때문이었습니다.
이관이란 중이와 코 뒤쪽(비인강)을 연결하는 가는 관으로, 외부 기압과 중이 내부 기압을 맞춰주는 환기 통로입니다. 귀가 먹먹할 때 하품을 하거나 침을 삼키면 잠깐 뚫리는 느낌이 드는 게 바로 이관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껌을 씹는 동작이 이 이관을 반복적으로 자극해 압력 평형을 되찾게 해 줬던 것입니다. 같은 원리로 코를 막고 입을 닫은 채 살짝 숨을 불어넣는 발살바 조작(Valsalva maneuver)도 이관을 일시적으로 열어주는 데 효과적입니다. 발살바 조작이란 코와 입을 막은 상태에서 내쉬는 힘을 주어 이관을 강제로 개방시키는 동작으로, 비행기 이착륙 시 귀 먹먹함을 해소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관 기능이 왜 이렇게 중요하냐면, 이것이 무너졌을 때 발생하는 삼출성 중이염(滲出性 中耳炎) 때문입니다. 삼출성 중이염이란 이관 기능 저하로 중이 내 환기가 안 되면서 끈적한 액체가 차오르는 상태인데, 열도 통증도 없어서 부모가 알아채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청력이 약 30dB가량 떨어집니다. 30dB 저하란 조용한 방에서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한 수준으로, 아이 입장에서는 수업 내용이 뭉개져 들리는 상황입니다. 결과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해 보이는 행동 변화로 나타납니다.
아이가 산만해졌다고 야단치기 전에 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귀 건강을 흔드는 진짜 주범은 '코'에 있다 (feat. 진주종성 중이염의 경고)
소아 중이염 유병률은 만 3세까지 약 80%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만큼 흔한 질환입니다(출처: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이관 기능 저하의 주된 원인은 비염과 축농증입니다. 콧물이 이관 입구를 막으면 중이 환기가 안 되고, 이것이 반복되면 삼출성 중이염에서 만성 중이염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만성 중이염 중에서도 진주종성 중이염(眞珠腫性 中耳炎)은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진주종성 중이염이란 고막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형성된 염증 덩어리(진주종)가 주변 뼈와 이소골, 심한 경우 달팽이관까지 녹여버리는 진행성 질환입니다. 이 단계까지 가면 약물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고 수술적 치료가 불가피합니다. 국내 만성 중이염 환자 수는 연간 약 40만 명 수준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귀 건강을 지키는 핵심은 결국 코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염이나 알레르기 비염을 방치하면 이관이 만성적으로 막혀 중이 환경 자체가 나빠집니다. 코 치료가 귀 치료의 시작인 셈입니다.
물놀이 후 귀 증상이 생겼을 때 "중이염이겠지"라고 단정 짓기보다, 외이도냐 중이냐를 먼저 구분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저처럼 껌 처방 하나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진행성 질환일 경우에는 방치할수록 청력 손실이 커집니다. 귀에서 이상한 느낌이 지속된다면, 특히 아이가 TV 볼륨을 자꾸 높이거나 말을 못 듣는 일이 잦아진다면 이비인후과에서 고막 상태와 청력 검사를 함께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증상이 있을 경우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