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만 있으면 살을 뺄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으십니까? 저도 한때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30대에 체중계 바늘이 야금야금 올라가는 걸 보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되지"라고 생각했고, 그 결과는 매번 자책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비만이 의지의 문제가 아닌 호르몬 시스템의 고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숨 참기 같은 식욕, '세트 포인트'라는 거대한 벽
다이어트를 할 때마다 어느 선까지는 빠지다가 그 이후로는 꼼짝도 안 하는 경험을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그 벽이 왜 존재하는지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벽의 정체는 세트 포인트(Set Point)입니다. 여기서 세트 포인트란 시상하부가 '정상 체중'으로 인식하고 유지하려는 몸무게의 기준값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뇌가 특정 체중을 '생존에 필요한 정상 상태'로 각인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 기준점이 높게 설정된 사람이 식욕을 억제하려 하면, 뇌는 이를 기아 위기로 인식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다시 그 체중으로 되돌리려 합니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호르몬 중 하나가 렙틴(Leptin)입니다. 렙틴이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뇌에 "지방이 충분하니 그만 먹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포만감 조절 물질입니다. 고도비만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뇌는 높은 렙틴 수치를 '정상'으로 학습합니다. 그래서 살이 빠져 렙틴이 줄어들면, 뇌는 패닉 상태에 빠져 식욕을 폭발시킵니다. 먹는 행위가 의지나 탐욕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본능인 셈입니다.

물속에서 숨을 참는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버텨도 결국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쉴 수밖에 없습니다. 고도비만 환자가 식욕을 참는 것이 정확히 그런 상태입니다. 이것을 "의지 부족"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익사 직전인 사람에게 "왜 숨을 쉬느냐"라고 따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고도비만 환자가 식이요법과 운동만으로 체중을 유의미하게 감량하고 5년 이상 유지할 확률은 0.3%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담배를 의지로 끊을 확률이 약 3% 수준인데, 고도비만 탈출은 그것보다 열 배 더 어렵다는 뜻입니다(출처: 대한비만학회). 이 수치를 보고서도 "마음만 먹으면 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 경험상 30대에 접어들면서 저탄고지 다이어트, 간헐적 단식을 번갈아 시도했지만 어느 것도 세트 포인트의 인력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일시적으로 3~4kg이 빠지면 그 이상은 벽처럼 막혔고, 결국엔 원래 체중보다 오히려 더 찐 채로 끝나는 패턴이 반복되었습니다.
뇌 속의 식욕 라디오 볼륨을 0으로 내린 '마운자로' 6개월 차의 기록
고도비만 치료에서 세트 포인트를 꺾으려는 시도로 현재 가장 주목받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 위소매절제술: 위의 용적을 약 70~80% 절제하여 물리적으로 섭취량을 줄이는 수술적 치료
-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 약물: 마운자로, 위고비 등 식욕 억제와 포만감 신호를 조절하는 주사 치료
- 두 가지 병행: 수술 이후 요요가 재발한 경우 약물을 추가하는 복합 접근
어떤 방법이든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의지'가 아닌 '생리적 메커니즘'에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GLP-1 계열 약물이 왜 이렇게 주목받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이란 음식을 먹었을 때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췌장에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뇌에는 포만감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마운자로에 포함된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촉진 펩타이드)는 GLP-1과 함께 작용하여 지방세포의 에너지 대사까지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GLP-1 단독 작용제인 위고비보다 마운자로가 감량 폭이 크게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마운자로를 맞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뇌 속의 소음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저녁 메뉴를 고민했고, 배달 앱을 열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사를 맞은 이후 음식에 대한 집착이 거짓말처럼 줄었습니다. 24시간 내내 켜져 있던 식욕 라디오의 볼륨을 누군가 0으로 내려버린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하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초기 2~3주는 가벼운 구역감과 변비를 견뎌야 했고, 지속적인 약값 부담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6개월 동안 12kg을 감량했고,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버티는" 싸움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근감소성 비만의 덫과 만성질환으로서의 패러다임 전환
다만 한 가지 짚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GLP-1 약물을 맞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체중은 줄어도 근육이 함께 빠져나가는 근감소성 비만(Sarcopenic Obesity)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근감소성 비만이란 체지방은 여전히 높은데 근육량은 부족해서 대사 기능이 오히려 악화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약이 식욕의 폭력에서 해방시켜 준 것이라면, 그 여유로 운동과 단백질 섭취를 병행하는 것이 진짜 회복의 시작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약 덕분에 비로소 러닝을 시작할 수 있었고, 식단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이성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화두는 "약을 언제 끊느냐"는 질문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고도비만 환자에게 이 약은 끊는 게 목표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약을 끊으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비만도 평생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HbA1c(당화혈색소)란 최근 2~3개월간의 평균 혈당 수치를 반영하는 지표인데, 비만이 지속되면 이 수치가 올라가면서 당뇨 전 단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비만을 방치하는 것은 단순히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심혈관 질환, 수면무호흡증, 부정맥으로 이어지는 실질적 건강 위기입니다. 국내 성인 비만 유병률은 꾸준히 상승 중이며, 특히 고도비만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치료제에 대한 보험 급여화 논의가 시급하다는 전문가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살이 안 빠졌던 건 정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제 몸의 호르몬 세트 포인트가 높게 잡혀 있었고, 저는 그것을 맨손으로 이기려 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제 몸을 탓하는 것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비만 치료를 고민하고 있다면 자책부터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검진을 통해 당화혈색소와 인슐린 저항성 수치부터 확인해 보십시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 그게 시작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치료 여부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